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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ate 24-01-03
지난 11월 모교는 탁월한 연구 업적을 보인 10명의 모교 교수에게 학술연구교육상 연구부문을 시상했다. 모두가 유망한 연구지만, 특히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뇌과학·미디어 심리학·로봇 분야에서 각각 성과를 이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세 명의 연구자를 본지에서 인터뷰했다.
경쟁심 유발·불안 조절 ‘신경교세포’의 재발견
이성중 (미생물87-92) 모교 치의학대학원 교수
길다란 원통 모양 튜브 양끝에 한 마리씩 쥐를 놓는다.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처럼, 튜브 중간에서 만난 쥐들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. 어떤 쥐는 밀고 버티며 튜브를 차지하지만, 어떤 쥐는 끝내 밀려난다. 경쟁을 통해 쥐의 ‘서열’이 확인되는 이 튜브 테스트 장면은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.
경쟁에서 이기는 쥐는 뭐가 다를까. 신경생물학자인 이성중 교수는 뇌의 신경교세포에서 답을 찾았다. 이 교수 연구팀은 8월 “생쥐가 다른 생쥐들과 경쟁할 때 뇌 전전두엽 영역에서 신경교세포의 일종인 성상교세포가 활성화된다”는 사실을 밝히고 ‘네이처 뉴로사이언스’에 발표했다.
어떻게 이런 연구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“경쟁심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, 전전두엽에서 신경교세포의 기능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다”고 했다.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우월행동에 전전두엽의 신경세포(뉴런)이 관여함은 10여 년 전에 보고된 사실. 그러나 이번 연구로 경쟁심 같은 고위 뇌 기능이 신경세포가 아닌 ‘신경교세포’에 의해 조절됨이 처음 밝혀졌다. 뇌세포라고 하면 뇌에서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만 떠올리지만, 사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신경교세포다. 신경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시냅스의 가소성을 조절하고, 신경계 내 면역·염증반응을 조절하는 기능도 있지만 뉴런을 보조하는 역할로 인지되며 신경과학 연구에선 오랜 시간 ‘조연’에 불과했다.
이 교수도 처음엔 미국 앨라배마대에서 신경면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구강·안면 등의 신경병성 통증에 신경교세포가 관여함을 밝혀냈다.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. “중추신경계의 60~90%를 차지하고 뉴런보다 10배나 많은데, 더 많은 기능이 있지 않을까?” 뇌 영역별로 신경교세포의 다채로운 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시작한 계기다.
첫 성과로 해마 영역에서 성상교세포의 불안 조절 기능을 발견해 작년 ‘네이처 커뮤니케이션’에 발표했다. 다음엔 생쥐의 전전두엽에서 성상교세포의 활동성을 실시간 모니터링했다. 사회적 서열이 높은, 즉 경쟁 끝에 튜브를 차지한 생쥐는 성상교세포 활동성이 더 컸다. 심지어 해당 성상교세포의 활동성을 증가시키고 억제함에 따라 정해진 서열이 역전되기도 했다.
이 교수는 “성상교세포 하나가 몇십만 개의 시냅스를 감싸면서 마치 두 사람의 말을 중간에서 전해주듯 신호의 중요도를 파악해 양쪽 뉴런에 보내준다”고 했는데, 이 경우 성상교세포가 주변 신경세포의 흥분성과 억제성 시냅스 신호 균형을 조절함으로써 경쟁심과 우월행동에 관여했다는 분석이다. 경쟁에 승리한 생쥐들이 사실은 “잘 밀어서가 아니라, 상대가 밀 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잘 버텼기 때문에 이기더라”는 연구진의 관찰은 흥미롭다. 성상교세포를 자극한 2등 쥐에게 거듭 패배를 경험한 1등 쥐는 우울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. “인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”고 했다.
신경교세포는 이제 뇌 기능에서 단순 조연이 아닌 ‘공동 주연’으로 올라섰다. 이미 파킨슨,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뇌질환은 물론 자폐증·우울증·조현병 등에서 핵심 역할이 밝혀져 구체적인 기전을 파악하는 단계다. 그의 실험실에서도 전전두엽 영역 신경교세포가 우울증에 관여한다는 데이터가 나왔다. 향후 신경교세포를 타깃으로 한 치료약이 개발될 수도 있다. 이 교수는 “앞으로 신경교세포의 어떤 무궁무진한 기능이 밝혀질지 궁금하다”며 계속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.
'튜브 테스트'를 통해 경쟁 중인 생쥐의 전전두엽 영역에서 성상교세포 활동을 관찰한 실험 장면. 사진=이성중 교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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